김성룡
KIM Sung Ryong
생전의 내 아버지는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중학교까지 마친 후 한국으로 왔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다시 나고야에서 전철을 타고 낯선 일본 시골마을에 내렸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금빛잉어들이 놀고 있는 오래된 석조다리를 건너간다. 하교길의 남녀 고등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순간 그들의 교복 에서 풀빛냄새가 난다. 이 마을은 온통 짙은 강물 냄새와 천리향 냄새가 가득하고 햇살은 따스하다. 무심하게 마을길을 걷다가 가장 낡은 일본 전통가옥의 뒷 뜰에서 마른 나뭇잎을 주어서 손으로 부벼 본다. 나는 이 마을의 집들과 나무들과 길들을 스케치하거나 사물들을 흔적들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곧 저물 무렵이어서 할머니가 주인인 식당에서 따뜻한 덮밥을 먹고 .30대 여성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멋진 인테리어의 옷 샵에 들렀었지. 그 디자이너가 만든 옷들은 흑백의 절제된 모노톤의 모던한 디자인이어서 좋았다. 나는 인생의 위대한 계절들을 숱하게 지나쳐온 노인들이 많은 이 마을에서 심신이 편안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마을을 만날 때마다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발견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서성거린다. 지금 나는 나무로 만든 목조의 육교위를 걷다가 마을을 내려다본다. 낯선 마을은 내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긁히고 선 긋고 횡단하고 잘리고 이어지며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의 연속이다.
나는 본일이 없다. 앞서가는 나의 저녁그림자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생멸문 앞에서 어떤 이유도 잊고 서성거리는 내 모습은 천리향 나뭇가지에 걸린 채 펄럭거리다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검은 비닐봉지였다.
김성룡
1962 년생, 서울 출생
주요 개인전
상처들, 복합문화공간 꿀&풀, 서울, 한국
검은 회오리의 숲, 아리랑 갤러리, 부산, 한국
보이지 않는 신체, 수가화랑, 부산, 한국
검은 숲으로 보다, 갤러리 화수목, 서울, 한국
흔적_비실체성, 사비나 미술관, 서울, 한국
공의 뜰, 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부산, 한국
흔적_시각적 사유, 사비나갤러리, 서울, 한국
근대의 숲, 동백아트센터, 부산, 한국
주요 단체전
공성훈.김성룡 2인전, 문앤박 갤러리, 부산, 한국
세계의 미술가들, 레디움갤러리, 부산, 한국
한국 미술의 악동들, 경기미술관, 경기, 한국
유신 초상, 평화박물관, 서울, 한국
사유의 공간, 가나갤러리, 부산, 한국
구글 아시아 프로젝트, 구글
부산 토큐멘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한국
집요한 그리기, 경기문화재단 미술관, 경기, 한국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한국
돈전, 사비나미술관, 서울, 한국
한국현대회화 Carros 현대미술관, 프랑스
용꿈, 성곡미술관, 서울, 한국
앉는법, 인디프레스 갤러리, 서울,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