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된 풍경

코리아 투모로우 2017

왜 ‘해석된 풍경’인가?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1) ‘풍경 도둑놈’의 풍경 해석하기

인간은 풍경 속에서 산다. 풍경은 자연풍경으로 대표되나 인간풍경 혹은 사회풍경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인간과 자연처럼 예술작품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부분도 드물다. 문제는 풍경을 어떻게 수용하는가, 여기에 있다. 풍경을 발견하고, 또 이를 해석하는 작업, 이것이 예술행위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평생 도둑질을 즐기면서 살았다
말하기 좋아 역마살 인생이지
좋은 풍경 찾아다니며 세월을 탕진했다

멋진 풍경 하나 만들어 남에게 보이지도 못하고
낡아 버린 탐미의 얼룩들
이마에 쭈글쭈글 밭고랑으로 남았다

진정 고백하건대
평생 남의 풍경만 훔치면서 살아왔다

나는 도둑놈이다
풍경 도둑놈

졸시 <나는 도둑놈이다>를 인용했다. 탐미의 인생은 평생 좋은 풍경만 찾아 다녔다. 멋진 풍경 만들어 남에게 봉사하기는커녕, 남이 만든 좋은 풍경만 구경 다녔다. 그래서 “나는 도둑놈이다. 풍경 도둑놈”, 풍경을 훔치면서 살아온 인생. 대부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풍경 도둑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화가도 해당될 것 같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직업이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도, 그 풍경을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의미는 다르게 나타난다. 민족, 시대, 지역 혹은 보는 이의 계급과 계층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수용된다. 그래서 관점이 중요하다. 역사는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사관(史觀)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술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풍경론’에서 전통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은 곧 ‘풍경의 발견’이라고 주장했다. 풍경은 무엇을 의미하는 인식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경의 탄생은 내적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풍경의 발견, 여기에 근대적 사유의 과정이 담겨 있다. 예술가에게 있어 풍경은 발견되어지는 그 무엇이다. 또 풍경은 해석되어지는 대상이다. 훌륭한 작품은 작가의 독자적 해석을 담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여, 해석 없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없다. 작가 나름의 독창적 시각, 그것이 곧 해석이다. 사물과 소재는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미술의 장식화 혹은 상품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해석’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이번 전시는 ‘해석된 풍경’이라는 주제의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 풍경은 자연 그 자체 이외 인간과 사회까지 아우르고자 한다. 전시 범주는 ‘자연 그리고 인간+사회’, 이런 형식으로 골간을 세울 것이다. 출품작의 내용에 따라 전시구성과 소주제의 설정이 신축성 있게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해석이다. 그래서 스마트 폰으로 기념촬영 하듯 단순 재현은 의미가 약하다. 뚜렷한 해석의 과정이 없다면 특히 그렇다. 단순 재현에서 해석된 풍경, 작가의 독창적 발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숨은 의도 가운데 하나는 형상미술 혹은 리얼리즘 미술의 재조명에 있다. 1980년대 이래 숨 가쁘게 전진해 온 리얼리즘 미술의 발자취와 그 변모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과거의 주역들을 중심으로 하여 신진 청년세대에게까지 작가 참여의 폭을 넓혔다. 한국발 리얼리즘의 국제무대로의 발신, 중간 점검의 역사적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풍경은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발견되고 해석된 풍경의 의미는 달리 전달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풍경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이번 전시는 그 좌표 확인 작업이라고 믿고 싶다.

(2) 민중미술운동의 성과와 작가들

20세기 한국은 질곡의 역사로 이루어졌다. 전반부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시대였고, 후반부는 남북분단에 따른 분단시대였다. 그 한복판에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안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의 장미꽃’이라는 표현처럼 모욕당할 정도였다. 친일잔재 등 민족모순의 청산은 지지부진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기도 했다. 물론 급속 성장과정에서 ‘버려야 할 유산’은 적지 않았다. 희생을 딛고 일어선 민주주의의 조국, 이런 여세는 ‘촛불 혁명’까지 일구어 세계적 관심사로 부상되기도 했다. 국민총생산 3만 달러의 신기루 뒤에 숨어 있는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수준의 출산율 그리고 청년 실업율과 고령화 사회 등 사회문제는 점증하고 있다. 모순의 땅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옳은가.
1970년대만 해도 일제 식민지교육의 후예들에 의해 미술계가 장악되어 있었다. 국전으로 상징되는 보수적 아카데미즘의 횡행이 이 점을 말해 준다. 보수성에 대하여 대항하며 일어난 이른바 ‘현대미술’ 운동은 낮은 차원에서의 사적(私的) 공간에 침잠하기를 즐겼다. 미술의 사회적 기능은 무시되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이은 전두환 독재정권, 암흑시대는 험악해도 미술가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예술은 순수하다’라는 표어를 내세우면서 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예술 순수론처럼 정치적인 구호도 없다. 이런 암흑의 시기에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들고 일어섰다. 1979년 ‘현실과 발언’ 그룹을 비롯 1980년대 중반 민족미술협의회 등의 ‘민중미술 운동’은 열화와 같이 불붙었다. 80년대 미술운동에 헌신적으로 투신한 젊은 작가들, 이제 화단의 원로가 되어 붓을 들고 있다.
손장섭, 김정헌, 임옥상, 강요배, 안창홍, 박불똥 등은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단초를 이룬 ‘현실과 발언’ 동인이었다. 보수적 아카데미즘과 단색화 운동 등이 횡행하던 미술계의 병폐를 딛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던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었다. 이들이 내세운 기치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이고, 미술 민주화였다. 군부 독재 정권은 이들에 대하여 탄압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응집력과 더불어 투지를 일구었다.
손장섭은 식민과 분단 현실을 분할된 화면에 갖가지의 도상으로 집약했다. 그는 ‘기지촌’에서 ‘중앙청’ 그리고 달동네, 철책선, 금강산까지 다양한 풍경을 선택했다. 이는 한국현대사의 아픈 현장을 증거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현실은 자연 속으로 가 당산나무 혹은 소나무 등으로 상징화했다. 사실적 형상력과 상징성은 손장섭 화풍의 특색으로 나타났다. 김정헌은 피폐해지는 농촌현실과 도시의 비인간화 현상을 풍자 비판했다. 시원스런 필치로 사회풍경을 해석했다. ‘각종 상업광고판이 뒤덮고 있는 달동네 풍경’과 ‘고층빌딩 배경으로 젊음을 구사하는 여성들의 서울찬가’ 그리고 ‘말목장터의 감나무’에 이르기까지 김정헌의 풍경은 다채롭다. 임옥상은 사회적 모순을 다양한 형식과 재료로 특화시키는 작업을 역동적으로 해왔다. 특히 ‘쇠’와 ‘흙’이라는 재료를 활용한 작업은 매체의 확대 이상으로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권력 혹은 폭력의 쇠와 생명성의 흙을 사용한 작업은 강력한 이미지를 환기시켜, 현실에 개입했다. 이런 시각에서 정치비판 등을 작품에 담았고, 공공미술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강요배는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자연과 역사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그는 현장 거주자로서 즉 ‘주체적 시각으로서의 제주’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백꽃은 아름답지만 상처의 제주는 동백꽃조차 타율적으로 떨어트리게 했다. 4.3사건 연작은 강요배의 역사의식을 말해준다. 상처의 섬 제주는 현대사의 상흔을 안고 있다. 강요배는 자연과 역사를 아우르면서 화면에 개성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안창홍은 현실의 모순을 불편한 상황으로 정리하는 데 익숙하다. 그의 나체 그림은 관능성과 거리가 있으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이웃 아저씨나 아가씨를 모델로 삼아 치밀한 묘사로 대상을 끌어안는다. 익명의 초상은 괴기스러울 정도로 불편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입체작업인 거대한 두상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박불똥은 콜라주 형식으로 정치 풍자를 탁월하게 이루어 내는 특장을 가지고 있다. 광고 이미지이나 정치선전물 같은 인쇄매체를 활용한 그의 비판의식은 치열하다. 풍경을 해석하는 시각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그가 다루는 소재는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대한민국 만세> 같은 작품의 경우, 다양한 소재를 한 화면에 집합시켜 배치하면서 모순과 상생을 표현하고 있다.
신학철은 한국근현대사 연작을 통하여, 역사와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재인식을 제공했다. 원래 모더니즘 미술로 출발했던 그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보다 치열한 작품 내용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지키는데도 앞장섰다. 그의 <모내기> 사건은 ‘공안 미학’이라는 신조어까지 남기면서 사회문제 되었던 민중미술 탄압사례의 대표격이었다. 평화로운 농촌풍경과 외세라는 쓰레기를 치우면서 모내기하는 장면을 그린 <모내기>는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북한찬양으로 해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의 감옥행까지 연결되는 불행을 낳았다. 이후 신학철은 보다 치열하게 정치 사회 등을 비판하는 화필을 들어 민중미술계의 대표적 화가로 부상되었다. 황재형은 ‘광부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대학을 마치고 그는 실제로 강원도 태백의 광산촌에서 광부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는 땀과 흙의 의미를 온몸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체험을 쌓았다. 그는 광부생활을 마치고도 폐광 마을을 지키면서, 광산촌의 자연과 인간을 화면에 담았다. 그의 사실적 표현력은 리얼리즘 미술의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다. 검게 물든 광산촌 계곡의 저녁노을 혹은 척박한 산에 쌓인 하얀 눈 그리고 쓰러져가는 광산촌의 초라한 집들. 황재형의 리얼리즘은 독보적 세계로 안내하는 조형언어로 작용한다.
이종구는 농촌의 현실을 농부의 초상으로 집약시키기를 좋아했다. 그는 고향 오지리 마을 농부들을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 진정성을 전달했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부대자루에 그린 그림이나 농기구 등을 차용한 작품 등에서 피폐한 농촌현실을 충실하게 담았다. 자연풍경 역시 자신의 언어로서 재해석하는 화풍을 보여주었다. 이명복은 ‘임술년’ 동인 출신이다. ‘임술년’은 극사실주의 화풍을 선호하면서 민중미술운동에 동참했다. 분단시대의 사회를 주제로 한 비판적 시각은 신선했다. 이명복은 제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고 있다. 소재의 폭도 넓혀 제주 해녀부터 ‘붉은 숲’까지 다양하다. 송창은 분단시대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그는 특히 분단의 현장인 임진강을 주제로 하여 현장을 화면에 즐겨 담았다. 6.25전쟁의 상흔은 60년이 넘어도 아직 살아 있어 조국산천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런 비극의 현장을 송창은 어눌할 정도로 꾸준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임진강의 상징성을 대작에 담으면서 민족의 현실을 증거하고 있다.
홍선웅과 김준권은 목판화가로 일가를 이루었다. 80년대의 목판화운동은 민중미술 운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오윤 같은 탁월한 작가의 활동도 있었지만, 운동의 현장에서 다량생산된 흑백 목판화는 그만큼 효용성이 컸기 때문이다. 중국의 항일운동 현장에서 노신의 목판화 운동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홍선웅은 선이 굵은 칼맛으로 비판적 언어를 목판에 담았다. 그는 목판의 전통성을 살려내면서 자연과 역사를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생명성의 강조는 이런 바탕에서 나온 주제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연평도>는 남북의 군사대치 상황을 환기시키면서 공존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김준권은 ‘목판화 운동가’로 잘 알려졌을 정도로 목판에 생애를 걸고 작업하고 있다. 그는 중국 노신미술학교에서 수학했을 정도로 수인목판화 기법 등 목판화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그의 다색목판화 기법은 특출하여 6도 인쇄도 능숙하게 처리한다. 근작은 아름다운 자연을 더욱 섬세하게 목판에 담고 있다. 그의 서정성은 자연예찬을 거리낌 없이 구사하게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연도 역사의식과 사회비판의 과정을 거쳐 나온 자연이어서 남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한때 민중미술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다, 이제 산개하여 각자의 개성적인 작업으로 발언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작가는 80년대처럼 구체적이고도 직설적 어법으로 사회와 현실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기도 하다. 표현방법은 비판적 시각으로 풍자하고 야유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또 많은 작가들은 간접화법으로 현실문제를 상징하거나 암유(暗喩)한다. 연륜에 따른 폭 넓은 대화 방식이다. 또 어떤 작가들은 자연의 품속에 들어 유유자적하기도 한다. 작품에 담긴 주제나 표현형식은 달라도 리얼리즘 미술의 장점은 방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 등은 주목하게 한다.

(3) 민중미술 운동 이후의 다양한 시도

황용엽은 원로화가로 인간실존의 문제를 독특한 시각에서 해석했다. 그는 월남작가로 분단과 전쟁을 체험한 세대이다. 그는 ‘불편한 역사적 진실’을 ‘꼬챙이’ 형태의 인체로 표현하여 주목 받았다. 그는 억압된 인간상을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상처 속의 인물임을 상기시켜 울림을 전달하고자 했다. 오원배는 인간실존의 문제를 ‘무제’라는 제목의 연작으로 평생 작업하고 있다. 직선의 시멘트 구조물을 배경으로 벌거벗고 부유하는 듯한 젊은 남성들의 인체 표현은 독자적 화풍이다. 정상적 자리에서 정좌하지 않고 있는 인물들, 그들 젊은이들은 왜 부유하고 있어야 할까. 인간성 상실의 현대사회에서의 소외 문제를 시사하고 있다. 유근택은 전통회화 기법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실험을 거쳐 독특한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먹 작업으로 일구어낸 풍경, 그 속에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을 담고 있다. 산수 풍경을 선택하더라도 현대적 시각의 요소를 결합시킨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전통재료의 인습적 한계를 뛰어넘는 장점을 보이고 있다.
김성룡은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무경계를 상기시키는 작업을 보였다. 그의 치밀한 묘사력은 억압된 상황을 연상시켰다. 특히 그는 쓰러진 말의 묘사를 통하여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일종의 폭력과 성애를 연상시키면서 경계 무너트리기의 조형세계를 연출하고자 했다. 그의 숲 작업은 숲속 나무 위에 앉은 새 한 마리를 표현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김지원은 맨드라미 화가로 잘 알려졌다. 그의 맨드라미 밭은 붉은 꽃밭이겠지만 언뜻 보면 피로 물든 대지와 같기도 하다. 꽃을 통하여 인간의 실존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발한 꽃은 어느새 시들고 이어 낙화로 표현되기도 한다. 시든 꽃은 꽃의 이면이고 실존이다. 이제훈은 소나무 숲을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그는 실제로 다년간 통도사 동네에서 머물면서 통도사 소나무 숲을 연구했다. 그런 결과 여명의 숲을 사실적으로 화면을 담을 수 있었다. 그의 <무위- 새벽을 깨우다>는 이런 경우의 작품이다. 그는 소나무를 통하여 민족의 의지를 염두에 두었다. 특히 씨알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이 역사와 사회의 주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고자 했다. 이세현은 ‘붉은 산수’로 유명세를 얻은 화가이다. 그의 자연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으면서, 그 자연 속에 역사의 장면들이 구획되어 유기적 형식으로 어우러져 있다. 몽환적 세계 같으나 현실의식이 바탕에 스며있다. 남한사회에서의 ‘빨강’은 각별한 의미와 상징성이 있는 색깔이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용어의 의미가 이를 말한다. 한 때 금기의 색깔이었던 빨강으로서의 작업은 이제 신선한 바람을 이끌기도 했다.
임흥순은 영상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위로공단>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할 정도로 독자성을 얻었다. 현실비판의 시각 아래 서정성과 서사성을 아우른 작업은 개성적인 영상으로 이어졌다. 제주에서 촬영한 <비념>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의 초기작은 지하실 단칸 셋방에서 지상의 셋방으로 이사 가는 날을 기록 형식으로 담은 영상작품이었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감동을 듬뿍 안겨주기도 했다. 안성석은 비디오와 사진작업을 통하여 이질적 이미지의 중첩으로 새로운 상징성을 얻는다. 가치전환의 요소를 주목하면서 작업한다. 백악산 아래 광화문 광장은 겨울강처럼 하얗게 얼어 있다. 그 위를 제복의 경찰들과 시민들이 어슬렁거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가치의 전환이다. 장종완은 연출된 불편한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그는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대상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했다. <올가닉 팜(Organic Farm)>의 경우, 사슴 가죽에 평화로운 자연을 그려놓고, 제목을 <그가 말하니 모두들 잠잠해졌다>와 같은 역설적 표현을 사용했다. 그래서 가짜 호랑이가죽에 한반도 풍경을 넣어 의미를 전도시키기도 했다. 그의 동물가죽 형태의 그림은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조혜진은 입체 작품으로 ‘집’이라는 구조를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그의 <변두리>는 재활용된 페트 용기를 사용하여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오래된 동네에서 수거한 간유리 등 건축부재를 활용한 <탑> 같은 작품은 이 점을 말한다. 금민정은 비디오 작업으로 특정 현장을 독특한 시각에서 담았다.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앞에 서 있는 미루나무, 거기에 부적처럼 매달린 비디오. 이는 죄수와 감시라는 관계를 암시하면서 장소를 환치시킨다. <통곡의 나무>는 비디오 조각으로 설치미술로 활용했다.
작고작가의 경우, 박생광은 원색을 활용한 채색화로 독자적 세계를 일구었다. 70대 말년에 이룩한 그의 역사인식과 더불어 전통의 창조적 계승 작업은 환골탈태의 범본을 보였다. 박생광은 전통불화, 단청, 무속화, 민화 등의 전통성을 활용하고, 또 한국근대사의 현장을 소재로 삼아, 독자적 화풍을 수립했다. 채색화의 복권에 기여도가 적지 않다. 원래 한국회화사의 주류는 채색화였다. 하지만 한국회화사 관련 연구서를 보면, 수묵문인화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고려불화 그리고 조선시대의 갖가지 채색화는 한국회화의 주류로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해 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의 말미에 박생광이라는 존재가 있어 주목을 요한다. 손상기는 꼽추와 단구(短軀)라는 신체적 한계를 딛고 일가를 이룬 유화가였다. 그는 ‘공작도시’ 연작을 통하여 도시의 소외지역을 주목했고, 또 그 나름의 독특한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그는 ‘시들은 꽃’을 주목하여, 다수의 역작을 만들었다. 더 이상 시들 것이 없어, 더 이상 버림받을 일도 없는 시든 꽃. 이는 자화상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지만, 어쩌면 동시대의 평범한 민중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손상기의 작품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계속 ‘호출’ 당하고 있다.

‘해석된 풍경’은 리얼리즘 미술의 재확인 작업과 더불어 우리 시대 미술의 역할을 재검점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정체성(正體性) 확인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분단시대의 연장선상에서 방기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미술가에게 있어 풍경은 훌륭한 작품 소재이지만, 그 소재는 독자적 해석에 의해 좋은 작품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인간은 해석하는 동물이다. 해석은 인간의 고유 권능이다. 하지만 해석 없는 풍경의 단순 나열은 대중을 식상하게 한다. 해석은 의미이다. 해석은 개성이다. 풍경에 대한 적극적 해석, 이제 예술에 있어서의 ‘해석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시켜야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 ‘해석된 풍경’이 리얼리즘 미술의 재인식에 일조하기를 희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