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Installation
현대미술도 상품인가? 현대미술의 개념적인 정의와 방향성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 미술이 미술시장의 거대한 지평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 즉 미술작품이 소비자본주의의 상품처럼 생산되고, 유통되고, 홍보된다는 불편한 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도식화해보면 생산자(작가) – 상품(작품) – 소비자(콜렉터)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함수 관계가 존재하고, 이를 활용한 기획, 전시,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이 경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러나 이 도식화의 맹점은 달라진 미술시장의 범위와 성격, 다변화된 소비자의 취향, 그리고 진화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미술의 가격을 기반으로 경제학자적인 접근법으로 쓰여진 수 많은 미술시장분석서들이 미술계의 관계망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보여준다. 현대미술은 가격이 아닌 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가치로 설명되어야 하며, 그 가치가 만들어지는 환경(condition)을 논해야 한다. 여기서 논하는 가치는 경제적인 수치가 아닌 창의적인 발상에서 시작된다. 1957년 마르셀 뒤샹이 창의적인 발상 (the Creative Act)의 원천을 차이(gap)에서 찾았던 것처럼, 작가의 초기 작업의도와 작업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주관적인 개입 사이의 차이, 작품을 둘러싼 작가의 의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해석 차이 등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관점의 차이가 창의성의 동인이라면, 관점의 차이, 관점의 다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맥락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
작품 프레임 안에 놓인 의미, 관객과의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 작품과 공간 사이에서 생겨나는 의미, 작품과 작품 사이를 연결하는 의미 등 다양한 의미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의미망을 가치로 환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작품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미적 체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객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미술의 소유에서 미술로의 접속의 시대를 알리는 징후들이 현대미술의 존재방식과 생산 방식에도 적 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작품의 물리적인 요소가 아닌 비물리적인, 그래서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도 작품의 한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시도가 유효해진다.
이번 전시 <이미지 인스톨레이션(Image Installation)>의 시도 역시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단순히 공간을 보기 좋게 꾸미는 인테리어 디자인 개념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상징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인스톨레이션을 정의한다. 때론 구부리고 앉아서, 때론 머리를 치켜 들고, 때론 구석까지 다가가야 감상할 수 있는 불편함이 인스톨레이션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받아 들이며, 이제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적어도 세 가지를 팔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상품으로서의 작품 그 자체이고, 두 번째는 작가의 이름 즉 브랜드, 세 번째는 작가의 철학이다. 놀랍게도 철학을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서 시장은 움직여왔다. 다시 말해 미술과 상품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작품자체, 작품설명문, 그리고 작품 인스톨레이션 방법론 모두에 적용되어야 한다.
전시 <이미지 인스톨레이션>에서 말하는 인스톨레이션의 정의는 이미지의 존재방식이다. 이미지가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떤 감각기관을 자극할 것이가? 어떤 서사구조를 보여줄 것인가? 관객과의 접점은 어떤 소통으로 풀어낼 것인가? 등 이미지 자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 밖, 박스 밖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컨텍스트를 생산한다. 마르쉘 뒤샹의 변기 이후, 즉 일상의 오브제 역시 미술의 제도권 속으로 편입된 현 상황 속에서 새로운 예술 형식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 형식이 작품의 이미지 (감각을 자극하는 구상 이미지와 추상 이미지 모두를 포함) 그 이상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것을 해석함에 있어 그것이 놓이게될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미지의 존재 방식, 즉 인스톨레이션을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인스톨레이션의 외연은 새로운 재료, 새로운 기법,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상징, 새로운 시점, 심지어 새로운 논란까지 더해지며 비대해진 현대미술의 개념처럼, 난해하고 한 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경계선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전시를 앞둔 작가들과 미팅을 하게 되면, 설치시간, 텍스트, 이미지, 공간의 색, 빛, 소리, 벽,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사는 어떻게하면 본연의 작가의 의도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창의적인 공간설치를 할 수 있을까로 모아진다. 그러나 작품이 스튜디오를 떠나 전시공간에 도착했을때, 작품이 관객을 만날때, 작품이 다른 작품과 나란히 설치되었을때 등 다양한 과정 속에서 작품의 의미와 해석은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이제 예술가들의 역할이 큐레이터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물리적인 공간 구성, 철학적인 서사구조, 과정, 상호작용, 시간개념, 시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민하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작품 설치 가이드에까지 사인을 해 넣었던 조셉 코주스의 예에서 확인해볼 수 있듯이, 오리지널리티와 카피 라이트의 대상으로 설치 메뉴얼까지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즉 인스톨레이션은 작품의 부속물이 아닌 협상의 여지가 없는 작품 자체라는 이야기이다.
헤럴드 제만(Harald Szeemann)의 그 유명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 (When Attitudes Become Form)> 전시는 인스톨레이션을 고민하는 작가, 큐레이터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44년이 흐른 뒤 헤럴드 제만이 아닌, 후배 큐레이터 게르마노 셀란트(Germano Celant, 1940)와 사진조각가 토마스 디만트(Thomas Demand, 1964), 그리고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 1944)의 협업이 만들어낸 2013년도판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전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스톨레이션의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원본전시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준 샘플이다. 작품, 컨셉, 과정, 상황, 정보, 상호관계, 공간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 전시장 자체를 이탈리아 베니스 팔라조 카 코르너로 그대로 옮겨온 복제전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전시 뿐 아닌, 전시장 전체를 그것도 현대미술관 전시를 18세기 구조물 위로 덮어 쉬우는 모험을 감행하며, 그것도 모자라 장소특정적인 속성이 매우 중요한 설치미술 전시를 완전하게 복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무모한 시도는 오리지널리티의 대상이 더 이상 작품 자체만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과 작품, 작품과 공간, 공간과 관객 사이의 관계설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스톨레이션 방법론을 구사함에 있어서 물리적인 결과물 자체보다는 변화하는 과정, 변화하는 상태 자체가 더 중요해 졌다. 그리고 이는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하면 보다 큰 인식의 틀, 공간, 액션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로 확장된다. 그래서 인스톨레이션의 정의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3차원적인 드로잉을 넘어, 관객의 시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퍼포먼스, 상거래 등으로까지 연결된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1950년대 이후 본격화된 산업자본주의 대량생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오브제가 가지는 상징성이 미술제도의 문맥 안에서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탐구는 이미 한 세기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어쩌면 진부한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오랜 탐구 덕분에 재료 자체의 물성 보다는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상징성을 현대미술의 재료로 바라보며 다양한 소통방식을 생산하는 시도가 가능해졌다. 여기에 더해 테크놀러지, 인터넷, 가상현실이 일상화되면서 미술의 정보화, 미술의 비물질화 경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산업화와 소비자본주의 그리고 정보화 시대는 예술을 구성하는, 감상하는 방식의 외연을 확장시켜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구적인 재료와 전통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 감상에 익숙했던 관객들과 그것을 수집했던 미술관 컬렉션 리스트에 이제 한시적이고 유동적인 재료와 기법의 작품들까지 포함되기 시작했다. 작품과 작품이 놓일 문맥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정의에 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수집, 소통, 마케팅하게 될 미술제도의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예측해보아야 한다. 새로운 인스톨레이션 전략이 예술형식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형식을 넘어 개념과 스토리, 더 나아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더 알고 싶다면, 인스톨레이션 전략이 미술사에서 정의하는 “설치미술작가”만의 유산이 아닌 모든 예술가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오픈소스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이대형 (아트 디렉터, 현대자동차)
Lee Daehyung (Art Director, Hyundai Motor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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